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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해외여행기

이탈리아 여행 일곱! 화산폭발로 시간이 멈춰진 도시 폼페이

by powernomics 2017. 8. 3.

 

  서기 79년 8월 번영하던 로마제국의 도시 폼페이(Pompeii)는 베수비오(Vesuvio)  화산의 폭발로 도시전체와 2만여명의 주민이 화산재에 파묻히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한 비운의 도시이다. 베수비오(Vesuvio)  화산은 폼페이(Pompeii)가 완전히 화산속에 덮여버리는 폭발 이전에 몇차례 경고를 했었지만 폼페이(Pompeii) 사람들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베수비오(Vesuvio)  화산의 폭발로 인해 타는듯한 유황 냄새와 연기로 호흡하기 어려웠고 날아드는 죽음의 재로 공포와 절망의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 폼페이(Pompeii)라는 도시는 폭발해버린 용암 불덩어리와 화산재 속에 사라져버렸다.

 

폼페이 유적 입구에 있는 티켓 판매 부스. 많은 사람들이 티켓을 구입하려고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폼페이 유적을 보려면 짧은 터널로 된 입구인 마리나 문(Porta Marina) 을 지나야 한다. 마리나 문(Porta Marina)은 두 개의 통로로 되어 있다. 왼쪽 입구는 보행자를 위한 것이고, 오른쪽 입구는 소금이나 생선을 바다에서 운반해 오는 수레나 가축의 출입구였다고 한다.

 

 

 

 

 

 

 

폼페이 유적지 입구 쪽에서 볼 수 있는 유적지 모습

 

 

   강진을 동반한 베수비오(Vesuvio) 화산폭발로 분철한 화산재가 무려 1m가까이나 쌓였었고, 나폴리(Napoli)의 하늘을 검게 뒤덮었다고 한다. 교외로 도망치는 사람, 집안에서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피신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계속해서 내린 비로 인해 분출한 화산재와 용암이 응결하면서 거리 전체가 마치 찌는 솥과 같은 형상이 되면서 도시전체가 그대로 매몰되었다고 한다. 그 후 잔디와 덩굴식물들이 자라 그 자리를 덮게 되면서 폼페이(Pompeii)란 도시라는 이름과 함께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1,500년 동안이나 역사의 저편에 사라져 있었다.   

 

   폼페이(Pompeii) 유적지에 들어서면 쭉 벋은 도로들을 볼 수 있는데 도로가 인도와 차도로 구분되어 있으며  심지어 야간통행을 위하여 달빛에 반사가 잘되는 돌들을 중간 중간에 박아두었고 한다.

 

 

 

  입구에서 3분여를 걸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광장이 있는데 이 광장이 공회장이다. 폼페이(Pompeii) 시절 마차가 들어올 수 없었던 보행자 전용 구역으로 도시 전체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이라고 한다. 

 

 

 

 

 


   17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조심스러운 발굴작업은 아직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발굴된 유적과 유물들로 당시의 폼페이인들의 문화와 예술, 건축수준을 짐작할 수 있기에 충분하다.

 

 

 

 

 

   폼페이(Pompeii)는 9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다고 한다. 폼페이(Pompeii) 시로 들어가는 관문 근처에는 여관과 마굿관 그리고 병원이 있었고, 시내 중심 거리에는 선술집과 현재의 패스트푸드점과 같은 카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카페들은 로마인들이 공중 목욕탕에서 목욕을 마친후 간단한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폼페이(Pompeii) 유적 발굴을 통해 드러난 하수시설, 목욕탕, 시장, 극장, 원형 경기장, 음식점, 카페, 병원 등 각종 시설을 통해 2,000년 전 폼페이(Pompeii) 사람들의 문화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누리 것과 비교해 봐도 결코 떨어진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문화적 향유를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폼페이(Pompeii)의 마리나 문(Porta Marina)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길 오른쪽에 위치한 공회당인 바실리카(Basilica)를 볼 수 있다. 바실리카(Basilica)는 폼페이에서 가장 중요하고 오래된 공공 건물로서 재판소나 집회 장소로 사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장이 열리고 회합의 장소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코린트 양식의 거대한 기둥이 남아 있는 이곳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로마 바실리카(Basilica)라고 한다.

 

 

 

   폼페이(Pompeii)의 정치, 경제, 종교의 중심지는 포럼(Forum)이었다고 한다. 포럼(Forum)은 고대 로마시대 도시 중심에 위치한 광장이라고 한다. 포럼(Forum) 주변으로는 기념비나 석상, 연단 등이 있고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포럼 북쪽 중앙에는 기원전 2세기경에 건설된 것으로 보이는 쥬피터 신전(Temple of Jupiter)이 위치하고 있다. 쥬피터 신전(Temple of Jupiter) 뒤로는 폼페이의 시간을 멈추게 한 베수비오 화산이 유유히 서 있다. 

 

 

 

 

 

 

 

 

 

 

 

 

 

 

 

 

 

   폼페이(Pompeii) 유적들 중에서 곡물을 가루로 만들었던 방앗간을 볼 수 있다. 속이 비어있는 윗 부분에 곡물을 넣고 노예나 노새가 나무 손잡이를 잡고 돌려서 곡물를 가로로 빻았다고 한다. 우리 나라로 말하자면 맷돌이라고 볼 수 있다.

  

 

 

노예나 노새들이 곡물을 가루로 빤 것을 가지고 빵을 만들어 구웠던 화덕이다.

 

 

 

폼페이(Pompeii) 사람들이 음식을 조리하던 주방이 있었던 곳

 

 

 

   폼페이(Pompeii) 유적지 내에는 굵은 쇠창살로 사람들의 접근을 막아 놓은 자료관을 볼 수 있는데  이 자료관은 폼페이(Pompeii) 멸망 당시의 참변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양편으로 늘어선 것은 대부분 가제도구들로서 그릇이나 욕조, 물병, 화로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자료관 중앙에는 순간에 화석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모습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엎드려 있는 모습, 무릎을 껴안고 웅크린 모습, 누워있는 아이의 모습 등의 안타까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수많은 재난 상황을 맞이해서 그런지 폼페이(Pompeii)에서 만난 재난의 순간이 상상만 해도 소름끼치고 당시 사람들의 아품이 소리없이 다가온다.

 

 

 

 

 

   폼페이(Pompeii) 중앙 대광장 근처에는 폼페이 사람들에게 필수적이었다는 공회장 목욕장(Terme del Foro)이 있다. 이 목욕장은 공회장(Basilica)에서 오는 외지인들이 주로 이용했던 목욕탕으로 폼페이에서는 규모가 가장 작았지만 가장 세련된  목욕탕이

었다고 한다. 여탕과 남탕으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각종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목욕탕은 온탕과 미온탕, 냉탕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미온탕에는 천장의 둥근 구멍 아래에서 공기를 데웠던 청동 화로가 있었다. 당시 폼페이 사람들의 목욕 사랑을 알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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