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여행 10 : 미완성 오벨리스크와 아스완 하이댐
아스완(Aswan)은 이집트 남부의 태양의 도시이자, 고대 룩소르(Luxor)에서 남쪽으로 약 130km 떨어진 아프리카 풍의 변경도시였다고 합니다. 이곳은 댐으로 인해 유적이 수몰되기 전에는 관광의 도시로서의 역할을 다했지만 지금은 댐을 이용한 화학비료 등의 공업이 잘 발달되어 있다고 합니다.
나일강(Nile River) 동쪽 고대도시 스웨넷(Swenet)이 자리잡고 있던 곳이었다고 하며, 고대 이름인 스웨넷(Swenet)은 "무역(또는 定期市)"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아랍어 아스완(Aswan)이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아스완(Aswan)은 스웨넷(Swenet)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도시 답게 행정중심지이자 수단과의 교역이 이루어지는 상업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고, 또한 공업도시로서 구리 및 제철공업단지, 화학비료공장, 시멘트 공장, 제당공장 등의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아스완(Aswan)은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주거 지역 중 하나라고 합니다. 아스완(Aswan)은 이집트(Egypt)에서 햇살이 가장 따사로운 남부 도시이자 고대 개척지로 특히 아프리카 분위기를 많이 풍기는 곳이라고 합니다. 걸어서 도시 한 바퀴를 둘러 볼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하고 나일강(Nile River)에 지는 석양은 아름답기 그지 없어서, 여행자에게는 여행의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아스완(Aswan) 시내의 주도로에서 1km남쪽 부근에 고대의 채석장이 있는데, 이 채석장은 거대한 돌을 잘라 오크벨리스(Obelisk)를 만들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곳 채석장에는 카르낙 신전(Great Karnak Temple)에 사용될 오벨리스크(Obelisk)를 만들기 위해 바위에서 쪼아낸 400m에 이르는 미완성의 오벨리스크(Unfinished Obelisk)가 남아 있습니다. 아스완(Aswan)의 남동부는 나일강(Nile River)의 급류 지점으로, 고대부터 화강암 채석장으로 유명했으며, 부근에 흩어져 있는 채석장에서 화강암을 잘라 멀리 기자까지 운반해서 피라미드나 신전의 석재로 사용했다고 합니.
오크벨리스(Obelisk)는 하나하나 이음이 없이 한개의 조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이곳에서 작업하여, 테베(룩소르)나 멤피스까지 이동했다고 합니다. 미완성의 오벨리스크(Unfinished Obelisk)가 있는 이 채석장은 고대 이집트인들의 건축과 조각기술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유적자료라고 합니다.
아스완 하이댐(Aswan High Dam)은 1902년 영국인이 아스완(Aswan Dam)에 댐을 만든 이후 1960년 러시아의 기술 원조로 시작해 1971년에 완공되었으며, 약 10억 달러의 경비가 소요되었다고 합니다. 댐의 길이가 3.8km, 높이가 111m 저수량은 약1,570톤이나 되는 세계 최고 기록의 거대한 댐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나일강(Nile River)답게 댐의 규모도 세계 최대인데, 나일강(Nile River)의 범람을 막고 관개 농업용수를 확보하고자 댐을 건설했다고 합니다. 아스완 댐(Aswan Dam)은 하이(High) 댐과 로우(Low) 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0년에 걸쳐 세웠을 만큼 그 규모가 대단합니다.
아스완 댐(Aswan Dam)을 가는 동안 수많은 송전탑들을 볼 수 있는데 아스완 댐(Aswan Dam)을 건설한 후 해마다 발생하는 나일강(Nile River) 홍수를 사상처음으로 통제 했다고 하며, 210kw라는 엄청난 양의 전력을 생산해 당시 이집트 전기의 50%를 공급함으로써 이집트의 경제 발전을 이끌었다고 합니다. 결국 아스완 댐(Aswan Dam) 주변의 수많은 송전탑이 이집트 경제의 버팀목이 된 것입니다.
아스완(Aswan Dam) 건설을 통해 홍수가 줄고 관개용수 확보 및 전력 공급이 가능해지며 생활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풍요로워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스완(Aswan Dam)이 완공되며 사막 한가운데에 길이 485km, 폭 30km의 거대한 나세르호가 생겼고 이로 인해 누비아(Nubia) 지역의 주요 고고학적 유산들은 수몰되었고, 수많은 환경적, 문화적 문제를 야기하였다고 합니다. 9만 여명의 주민이 이주해야 했으며, 더군다나 댐이 지어지기 전에 홍수로 인해 토양이 비옥해졌던 것이 이제는 옛말이 되면서 원성을 사기도 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