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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해외여행기

프랑스 여행 7 : 파리에서 만난 인상주의! 오르세 미술관

by powernomics 2022. 9. 18.

 

    아르누보 양식의 웅장한 건물인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은 파리 만국 박람회를 기념해 건축가 빅토르 라루(Victor Laloux)에 의해 만들어진 철도역이었다. 오를레앙 철도의 종착역이었는데 철도의 전동화에 따라 플랫폼이 비좁아지게 되어서 점차 영업을 중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건물의 용도를 다양하게 바꾸어, 호텔이나 극장 등으로도 이용하였고, 철거하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합니다. 허물어질 뻔했던 이 건축물은 1986년 미술관으로 재탄생하게 되는데, 개조 작업은 본래의 건축 구조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면서 진행되었고, 유리 돔을 이용한 자연광과 컴퓨터에 의한 인공 조명을 효과적으로 조화시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국립 주드 폼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던 작품들이 이곳으로 옮겨지게 되면서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으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오르세미술관 외부 전경
<앙리 알프레드 자크마르(Henri Alfred Jacquemart)의 코뿔소>
<피에르 루이 루이야르(Pierre-Louis Rouillard)의 말작품>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 내부는 기차 역사의 커다란 창과 32m 높이의 거대한 유리 돔을 이용해 자연 채광을 끌어들였고, 40m138m의 중앙통로는 빛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과 사람을 표현하고자 했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으로, 자연 채광의 변화에 따라 컴퓨터로 조정되는 인조 광이 함께 어우러지는 조명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은 총 3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 1814년부터 1914년까지의 회화, 조각제품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인상파 작가의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는 5층이 가장 인기가 높습니다.

 

    오르세 미술관(Musée d'Orsay)은 층별로 시대군으로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은 여행객이라면 우선 모네나 르누아르, 세잔, 드가 등의 인상파 주요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5층과 고흐, 폴 고갱, 폴 세잔 등 후기 인상파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2층을 먼저 둘러본 후 앵그르와 들라크루아부터 밀레, 루소, 마네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0층을 둘러보는 방법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19세기 프랑스의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그는 특히 신의 아름다움과 조화와 균영을 추구한 화가라고 합니다.

<(Le Source)>은 앵그르가 무려 36년에 걸쳐 제작한 작품으로 아름다운 여주인공이 조금 불편한 자세로 몸을 비튼 조각같은 완벽한 몸매가 돋보이고, 얼굴에서는 꿈꾸는 듯한 눈동자와 수줍은 듯 살짝 뗀 입술이 매력적입니다.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의 샘

    <이식줍기(Les Gianeuses)>는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의 작품으로 추수가 끝난 가을 들판에서 아낙네들이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림의 모습은 목가적인 전원 풍경이지만 사실은 당시 프랑스 농민들의 힘겹고 어려운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민중 회화입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ccedil;ois Millet) 의 이식줍기(Les Gianeuses)

    <풀밭 위의 점심식사(Le Déjeuner sur l'herbe)>는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작품으로 화창한 어느날 신사와 두 숙녀가 풀밭에서 느긋한 한 때를 보내는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연미복 정장차림의 남자들과는 달리 한 여자는 벌거벗은 채 앉아 있고 또 다른 여자는 얇는 속치마만 걸친 채 연못에서 목욕하는 장면을 그렸습니다. 벨라스케스로부터 영향을 받아 터치가 아카데믹한 화풍에 익숙해 있던 당시 비평가나 예술가들의 눈에는 마치 그리다 만 그림처럼 비쳐져서 그런지 당시 살롱전에서 낙선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에두아르 마네(&Eacute;douard Manet) 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 (Le D&eacute;jeuner sur l'herbe)

     <풀밭 위의 점심식사로 낙선전의 악명 높은 스타가 된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1865년 살롱전에 출품한 <올랭피아(Olympia)>로 인해 풀밭 위의 점심식사보다 더 심각한 조롱과 비난에 휩싸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운 좋게도 이 그림은 낙선율을 낮추기로 한 살롱전의 방침에 힘입어 가까스로 입선이 되긴 했지만, 분노한 시민들이 작품을 훼손하려 덤벼들자 막대기로도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걸짝으로 손꼽히고 있어 19세기와 현재 미술에 대한 평가가 엄마나 대조적인지를 알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에두아르 마네(&Eacute;douard Manet) 의 올랭피아 (Olympia)

    누구의 작품인지는 몰라도 유난히 기억에 잘 남는 그림들이 종종 있습니다. 오르세 미술관 1층의 마지막 방에 걸려 있는 이 그림에 도착하면 많은 분들이 !” 하며 반가운 반응을 보이곤 합니다. ‘, 이 그림 알아하는 느낌일 겁니다. 바로 이 그림이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피리 부는 소년(Le Fifre)>입니다.

<피리 부는 소년(Le Fifre)>을 보면 인물 주변에 아무것도 그려 놓지 않았기 때문에 미완성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의도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진관에서 찍는 증명사진처럼 배경은 오로지 인물을 강조하기 위해서만 채색돼 있을 뿐 어떤 세부적인 묘사도 없는데, 이는 현실의 무대라기보다 색깔의 효과와 단순함의 힘을 보여주려는 시도였다고 합니다.

에두아르 마네(&Eacute;douard Manet) 의 피리 부는 소년(Le Fifre)

    <압생트를 마시는 여인(Le Buveur d'absinthe)>은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작품으로서 산업화의 뒤안길에 놓인 현대인의 소외와 고독을 고스란히 내뿜고 있는 듯 인간의 고독, 도시인의 허무함과 쓸쓸함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압생트(absinthe)>는 프랑스 술인데, 워낙 도수가 높아 가난한 사람들이 싼값에 취할 수 있다는 점에서 19세기 후반 프랑스 전역에서 가장 유명한 술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그림 속에 두 사람은 테이블 앞에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이 곳은 드가와 그의 친구들이 거의 매일 드나 들던 피갈 광장 옆의 누벨 아텐이라는 유명한 까페라고 합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검은 모자를 쓴 남자는 화가 드가의 친구였다고 합니다. 이름은 데부탱이라고 하는데, 당시에 이 사람은 자신의 일도 잘 안되고, 경제적으로 곤궁한 처지였다고 합니다. 곁에 있는 여성은 엘렌 앙드레는 무명 배우였다고 합니다.

    <압생트를 마시는 여인(Le Buveur d'absinthe)>은 인물의 앞쪽에 있는 테이블 때문에 공간 안에는 그림을 바라보는 감상자도 들어가 있는 듯 특이한 배치와 마치 상대방이 눈치 채기 직전 몰래 셔터를 누르다 어설프게 한쪽 면이 잘려나간 사진 한 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nbsp;&nbsp;압생트를 마시는 여인(Le Buveur d'absinthe)

 

    <물랭 드 라 갈레트(Moulin de la Galette)>는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의 작품으로 몽마르뜨 언덕 주변 갈레트 풍차 광장에서 벌어진 야외 무도회를 그린 작품입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과 몸 동작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구체적인 듯하면서도 물감으로 뭉개버린 듯한 과감한 색감처리도 뛰어납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의 물랭 드 라 갈레트(Moulin de la Galette)

    <루앙대성당(La Cathedrale de Rouen)>은 루앙대성당을 놓고 빛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그린 연작으로서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의 작품입니다. 고딕 건축의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루앙 대성당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색감을 화폭에 옮긴 작품이라고 합니다.

클로드 모네( Oscar-Claude Monet)의 루앙대성당(La Cathedrale de Rouen)

    <양산을 든 여인(Femme à l’Ombrelle)>은 따사로운 햇살을 가리기 위해 치켜든 양산과 살랑이는 바람에 나부끼는 듯한 치맛자락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작품입니다.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 지베르니에서 살던 클로드 모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부인 카미유를 병으로 잃게 됩니다. 이후 후원자로 만나서 나중에 동거까지 하게 된 알리스 가족과 살림을 합치고 재혼을 하게 되는데, 이 그림의 주인공은 그 알리스의 셋째 딸 수잔이라고 합니다. 또다른 한편으로는 두 번째 부인인 알리스 오쉬데 Alice Hochedé’의 딸 쉬잔 오쉬데 Suzanne Hochedé’가 살랑이는 바람을 등뒤로 받으며 언덕 위에 초록색 양산을 들고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고도 합니다.

    보일듯 말듯 약간은 설레이며 상기된 듯한 여인의 표정은 상향 구도 속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초록색 양산과 흰색 스커트는 더할나위 없이 싱그러운 느낌을 줍니다. <양산을 든 여인>은 맵시 있는 여인을 모델로 삼아 인물과 소도구, 그리고 인물과 자연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는 모네의 흔치 않은 야외 인물화라고 합니다.

클로드 모네( Oscar-Claude Monet)의&nbsp;양산을 든 여인 (Femme &agrave; l&rsquo;Ombrelle)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는 말년에 지베르니에 머물려면서 정원이나 연못을 가꾸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는데. 20년 동안 250여점의 <수련> 연작을 그렸다고 한다. 그 중에서 이 작품은 보라색과 초록색의 대치를 통해 아름다운 수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의&nbsp; 수련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William-Adolphe Bouguereau)는 프랑스의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인상주의에 반대해서 엄격한 형식과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부그로는 초상화에서부터 신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주제로 그림을 그렸는데, 그의 작품 중 자장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 바로 <비너스의 탄생> 이다.

    이 작품은 인체를 표현할 때 무게를 한쪽 발에 집중하고 다른 쪽 발을 편안하게 놓아 대칭적 조화를 이루게 하는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취하고 있어 더욱 우아하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William-Adolphe Bouguereau)의 비너스의 탄생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의 작품으로 1863년 당시 최고 권위의 살롱전에 출품되어 열광적인 호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나폴레옹3세가 직접 구입할 정도로 당시에 사랑받았던 작품으로 다른 비너스들과는 달리 파도위에 누워서 탄생한 순간을 맞이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합니다.

이 그림은 우리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담은, 오래된 핀업걸(Pin-up Girl) 같은 아름다움, 그리고 쳐다보고 눈이 즐거운 시각적인 쾌감을 가졌다고 합니다.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 의 비너스의 탄생

    〈도시의 무도회전원의 무도회는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작품으로 각기 선남선녀의 즐거운 여흥의 순간이라는 점에서는 인상파 특유의 주제를 취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도시의 무도회전원의 무도회는 르누아르 초기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분명해진 선과 단단하게 윤곽을 갖춘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전원의 무도회에 그려진 자신의 연인 알리스 샤리고의 얼굴과 몸집에서 드러나는 풍만한 양감은 다분히 고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시의 무도회의 여자 모델은 쉬잔 발라동(Suzanne Valadon)으로, 당대 최고의 모델이며 로트레크나 르누아르, 그리고 음악가 에리크 사티(Erik Satie)와 깊은 관계를 맺은 희대의 팜무 파탈이라고 합니다.

〈 도시의 무도회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전원의 무도회 〉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성당(L’Eglise d’Auvers-sur-Oise)>은 생 레미 드 프로방스의 정신병원에 수용됐던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는 동생 테오 반 고흐의 주선으로 오베르 쉬르 우아즈라는 파리 북부의 농촌 마을로 거처를 옮긴 후 2개월 조금 넘게 살면서 생의 마지막 기간을 보냈던 고흐가 가장 야심차게 그렸던 작품이라고 합니다.

진하고 선명한 색채감의 보색 대비를 이루는 화려한 색체에도 불구하고 입체적이지 않고 평면화되어 있는데, 평범한 고딕식 성당의 모습을 사정없이 뒤틀어 버린 과감한 묘사와 불길한 인상을 주는 낮게 내려 앉은 짙은 푸른색의 하늘, 회오리처럼 돌아가는 듯 사용된 거친 붓터치로 표현된 성당이 당시 고흐의 정신세계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성당(L&rsquo;Eglise d&rsquo;Auvers-sur-Oise)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43점의 자화상을 남겼는데 <예술가의 초상(Portrait de l’Artiste)>은 그 중에 조금 젊었을 때 그린 그림으로서 힘찬 붓의 터치가 인상적인 작품으로서, 그 유명한 폴 고갱(Paul Gauguin)과의 불화, 그리고 자기 귀를 스스로 자르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 바로 그 시절 고흐의 자신의 독특한 심리상태를 반영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많은 이들에게 익숙한 1889년 작품 <예술가의 초상(Portrait de l’Artiste)>은 정신병원에 입원한 고흐가 끊임없는 망상과 발작에 시달렸을 때 그린 그림으로, 그림 속에 격렬한 그의 감정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특유의 소용돌이무늬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시기부터 주로 나타나, 그의 고통과 불안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Willem van Gogh)의 예술가의 초상(Portrait de l&rsquo;Artiste)

    <고흐의 방>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가 아를에 있을 때 지냈던 방을 그린 그림으로서 비교적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주는 그림입니다. 독특하게 표현된 원근법과 사실적인 듯 하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형태가 재구성되어 있는 방 안의 물건들이 산만하면서도 어딘지 차분한 느낌을 줍니다.

색채 구성에 집착을 보인 화가답게 이 작품 속에는 고집스러운 그의 색채감이 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파란색의 벽과 빨간색의 이불, 그리고 노란색의 침대와 의자 등 다소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강렬한 색채들이 담겨 있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의 고흐의 방

    고된 노동 중 즐기는 잠시의 낮잠을 통해 부부의 평화로움과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낮잠>은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가 그린 작품을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가 모사한 작품으로, 고흐가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린 것으로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의 원작에 최대한 충실하려고 노력해 그린 그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만의 색채와 표현방식이 밀레의 작품과는 대조적인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의 낮잠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ccedil;ois Millet)의 낮잠

    <저녁의 미풍(L`air du soir)>은 앙리 에드몽 크로스(Henri Edmond Cross)가 폴 시냐크(Paul Signac)과 함께 그림 작업을 함께 하면서 그의 영향을 받을 때 이 작품을 그리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파리에서는 무정부주의 테러가 한창 일어나고 있는 시기였고, 에드몽 크로스(Henri Edmond Cross)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었으며 그의 작품에는 사회의 화합을 꿈꾸는 예술적 이상향이 나타나는 듯 보인다고 합니다.

<저녁의 미풍(L`air du soir)>은 은은하게 비추는 빛과 함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늦은 오후의 시간대를 표현했다고 하는데, 장식적인 표현을 위해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흐릿한 색감 표현과 화면을 일정하게 구분해주는 붓터치 기법 등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앙리 에드몽 크로스 (Henri Edmond Cross)의 저녁의 미풍(L`air du soir)

    <아레아레아(Arearea)>는 폴 고갱(Paul Gauguin)이 처음 타히티 섬에 머무는 동안 그렸던 작품입니다. <아레아레아>라는 말은 기쁨(즐거움)’을 뜻하는 마오리 말이라고 합니다.

<아레아레아(Arearea)>는 타히티 원주민들의 풍속과 풍경을 묘사한 작품으로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였으며, 동물과 사람, 그리고 자연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폴 고갱(Paul Gauguin)의 아레아레아(Arearea)

     <사과와 오렌지(Apples and Oranges)>는 후기 인상주의 작가 폴 세잔(Paul Cezanne)의 작품입니다. 폴 세잔(Paul Cezanne)사과  알로 파리를 정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 ‘사과를 빼놓고 폴 세잔(Paul Cezanne)의 그림을 이야기할 없다고 합니다.

이 작품을 언뜻 보면 일정하지 않은 시점, 선과 명암 등이 일정하지 않고 뒤죽박죽 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여러 방향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그림자는 어수선하고 탁자는 왼쪽과 오른쪽 선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 마치 부서진 것처럼 보입니다탁자  병은 기울어져있고 사과는 금방 밖으로 떨어질  같습니다.

이렇듯 불안정한 구도를 가진 사과와 오렌지는  시점에 고정돼 그린 것이 아니라 각각의 정물마다 다른 시점에서 그림을 그려 완성했습니다항아리와 굽이 달린 과일 그릇은 옆에서앞의 과일 접시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입니다정물 하나하나가 가지는 본질적인 형태를 그대로 표현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이렇게 여러 방향의 시점에서 그려진 정물화는 얼핏 전체적인 구성이 어지럽고 불안정할  같지만폴 세잔(Paul Cezanne) 이러한 부조화를 하나의 조화로운 장면으로 통합시켰다고 합니다 결과 각각의 물체들은 생동감역동감을 지니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공간감을 형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폴 세잔(Paul Cezanne)의 사과와 오렌지(Apples and Oran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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